인간의 성을 결정하는 데는 뇌의 역할이 최소 2/3을 차지한다.

같은 내용을 봐도 극단적인 사상적 편향성을 가진 사람이 읽을 경우 원하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하여 그 내용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가령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단속평형론을 두고 '연속적 진화를 반증한다'고 이해하는 창조과학 신도들의 경우도 한 예라고 볼 수 있겠다. 관련하여 화두를 던지고자 링크를 하나 공유하고자 한다. 네이버에서 '정신의학의 탄생'이라는 책의 내용을 일부 소개하고 있는데, 최근 출판된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댓글의 키배질에 주의할것'라는 책과 같은 내용을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하지현 교수가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들은 둘 다 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요약하자면, 남자 일란성 쌍둥이에게 포경수술을 시켰는데 의료사고로 인해 그중 한 명의 생식기를 잘라내야 했다. 절망한 부모는 당시 심리학의 거장이며 '성 정체성'이라는 개념의 창시자로 알려진 존 머니(John Money) 박사의 권고에 따라 한 아이를 아예 성전환수술을 시킨 뒤 이름도 '브렌다'로 개명시키고 여자아이로 기른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자신은 '남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무척 괴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다. 보다 못한 부모가 사실을 알려주었고, 브렌다는 다시 남자 이름으로 개명하고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재차 받게 된다. 말하자면 '성 정체성'은 사회적 요소보다 생물학적 요소가 훨씬 지배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성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 번째가 성 주체성(sexual identity)으로 성염색체와 성기의 생김새로 결정하는 생물학적 성을 말한다. 두 번째는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으로 이는 두 살 반에서 세 살 사이의 발달과정에서 ‘나는 어떤 성’인지 인식하는 심리적 성 정체성이다. 세 번째는 성 지향성(sexual orientation)인데, 매력을 느끼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뜻하는 것으로 이성이나 동성 혹은 둘 다가 될 수도 있다. 트렌스젠더, 동성애를 정의하는 데 이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데이비드 라이머의 경우 성 주체성은 남성이지만 사고로 성기가 손상되자 성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여성으로 만들려 했던 사례다. 또한 성 주체성은 남성이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이 여성이라 자각하며 자란 사람이 성인이 되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 성전환수술을 하기도 한다."
- 하지현 건국대학교 교수, '정신의학의 탄생'

Nature vs nuture 의 주제에서 identity의 문제는 nature가 주된 역할을 하기 때문에 nuture로써 강제로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를 터프(TERF;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하신 정크래디펨(자칭 'Gender-Critical(GnC) Radfem'; '젠더'라는 개념은 가부장적 사회구조의 산물이며 따라서 가부장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젠더'라는 개념 자체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들은 '모든 것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하고 싶으신가 보다. 그러나 그분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성염색체에 의한 호르몬에 반응하는 것은 생식기 뿐만 아니라 뇌 또한 그렇다는 점이다. 이 글의 저자는 성을 결정하는 요인을 생식기의 형태에 해당하는 '성 주체성', 뇌가 스로의 성별을 인식하는 '성 정체성', 그리고 뇌가 성적 대상을 인식하는 '성 지향성'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즉, 성별 결정의 2/3는 고추나 조개가 아니라 ''가 결정한다는 것. 중요한 것은, 뇌의 발달은 태어나면 타고나고 도리짓고 땡~ 이런게 아니라 태아 시절부터 사춘기 때까지 지속적으로 발달한다는 것. '가소성'은 '고착성'이 아니다. 다만 일단 형성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일 뿐. 게다가 요즘 나오는 의학 저널들을 보면 'sex'와 'gender'의 개념을 딱히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거의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말하자면 타고난 신체의 성과 본인이 인식하는 성은 완전히 생물학적으로 고착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만도 아니라는 것. 즉, gene과 environment 사이의 상관관계는 어느 한 쪽의 역할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면 할수록 비논리적 허접함이 가중될 뿐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그 두 가지 요소의 영향력은 모두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크페미는 '뇌'가 '생물학적 기관'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서 'gender identity'의 'gender'는 싸이코패스에 가까운 숭악한 심리학자 존 머니(John Money)가 창안한 개념이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공언한다(발생학적 오류). 게다가 '성별'을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을 '정크페미'는 일부만 취사선택해서 타고난 외생식기의 형태만이 성별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른 젠더적 성역할이 사회적 교육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따라서 신체성별과 성별인식이 불일치하는 경우는 그냥 '정신병' 내지는 '그냥 다른 성별을 코스프레하는 원래의 신체성별일뿐'이라는 인식으로 강제로 단순화 및 범주화를 시켜놓는다. 말하자면 '생리적 현상인 신체성별과 성인지'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젠더'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서 양자의 개념을 '스까묵고' 단순화시켰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자신의 성별에 대한 정체성 인식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고 타고난 생식기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은 "뇌"라고 하는 "생물학적 기관"이 인간의 성 결정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분류 기준에서 무려 3분의 2를 차지한다)을 하는지를 간과하는 것이다.

정크페미분들은 정신의학계에 'gender identity'라는 개념이 이미 의학적 개념으로서 통용되고 있음에도 그러한 (신체구조와 구분되는)정체성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을 두고 '젠더교 광신도'라고 칭한다. 게다가 동시에 그것을 인정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두고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며 가부장제와 타협한 '스까페미'라고 칭한다. 어디서 많이 본 논리구조 아닌가? 창조과학이 진화론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진화교 광신도'들이라고 덮어씌우는데, 진화론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을 일컬어서는 '타협이론'을 지지한다고 한다.

온라인상에서 전투력 충만한 극소수의 급진적 극단주의자들이 온건파들을 두고 소위 '기존의 권위에 타협한 섞어찌개'라고 비난하면서 동시에 '기존 이론을 신봉하는 광신도' 취급하는 것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원래 '전선'을 단순화하면 '공통된 적'을 설정하기도 쉽고 '내 편'을 단결시키기도 쉽다. 어딜 가나 극단주의가 가장 단순 명료하며, 가장 겉보기에 명확하고 이해하기 수월한 이론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맛들인 사람들은 점점 편향된 지식에만 중독되어 자신의 '사상'에 반하거나 그와 모순되는 지식은 버린다.인지부조화 결국 '선명성'이 부족한 온건한 현실주의를 일컬어 '스까족' 내지는 '타협주의'라고 멸시하는 '근본주의자'가 탄생하게 되며, 그 이론적 선명성의 매력에 의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지만, 결국은 그 보편성은 저멀러 안드로메다로 던져버린 배타적 과격성과 비현실성으로 인해 극소수의 과격분자들 '그들만의 리그'로 게토화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마치 21세기의 주사파 또는 창조과학처럼.

덧붙여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소위 '동성애 반대운동'을 하는 블로그에서 정크페미와 거의 전적으로 똑같은 주장을 자신들의 반동성애 및 가부장제 강화를 위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써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극과 극은 통한다'의 실사례 아니겠는가(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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